2026-09-10
요즘 반도체가 많이 팔려서 나라에 세금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걷히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렇게 더 걷힌 돈을 따로 모아두는 큰 돈 통, '미래대응기금'을 새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좋은 곳에 쓰겠다는 취지지만, 이 돈 통을 채우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시·도·군·구)로 가야 할 돈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래대응기금에는 2027년 한 해에만 162조 3,000억원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 돈의 상당 부분이 원래 지방자치단체로 가야 할 돈입니다. 바로 지방교부세 30조 5,000억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32조 5,000억원입니다.
지방교부세는 나라에서 걷은 세금 중 일부를 지역별 형편에 맞게 나눠주는 돈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알아서 쓸 수 있는 중요한 재원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지방자치단체에 31조 9,000억원이 배분되어야 했는데, 이 돈이 미래대응기금으로 먼저 빠져나가면서 실제로는 2조 3,000억원만 남게 됩니다. 지방으로 가야 할 돈이 30조원 가까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정부는 "기금을 통해 다시 지방에 돈을 보내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미래대응기금이 지방에 쓰기로 정한 돈은 15조 3,000억원뿐입니다. 빠져나간 돈보다 훨씬 적은 금액만 돌아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돈은 지방자치단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이런 용도로만 써라"라고 정해주는 보조금 성격이 강합니다.
보통 정부가 큰돈을 쓰려면 국회의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이 돈을 이렇게 쓰는 게 맞나요?"라고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미래대응기금은 특별한 예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전체 지출 계획의 30%까지는 국회에 물어보지 않고 정부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다른 기금들은 보통 20%까지만 바꿀 수 있으니, 미래대응기금만 유독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기금의 일부 돈을 '세입세출외현금'이라는 방식으로 굴리기로 했습니다. 쉽게 말해, 예산 장부에 아예 적지 않고 따로 보관하는 돈입니다. 예산 장부에 적히지 않으면 국회도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나라의 모든 수입과 지출은 반드시 예산 장부에 적어야 한다는 원칙(예산총계주의)을 벗어나는 방식입니다.
미래대응기금이 하겠다는 사업 중에는 원래 다른 예산이나 다른 기금에서 이미 하고 있던 사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 국가장학금이나 청년일자리 지원 같은 사업은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기존에 하던 사업을 기금 이름만 바꿔서 옮겨온 것입니다. 또한 반도체산업 특별회계, 기후대응기금, 지방소멸대응기금 등 이미 있는 여러 기금들과 하는 일이 겹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법을 새로 만들거나 고칠 때는 국민에게 미리 알리고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법으로는 최소 40일 동안 미리 알려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데, 정부는 이번 미래대응기금 관련 법을 단 5일만 예고하고 넘어갔습니다. 지방자치단체나 전문가들이 충분히 의견을 낼 시간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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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연구소는 지방교부세 관련 조항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국회의 예산 심사권을 제한하는 특례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또 미래대응기금이 직접 사업을 벌이는 대신, 세금이 늘거나 줄 때 완충 역할을 하는 성격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좋은 취지로 만든 돈 통이라도, 지방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만든다면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