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와 지방소멸에 맞선 해외 대응책들은 공통적으로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관계를 맺게 하느냐'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일본은 2014년 마스다보고서 이후 중핵거점도시 육성, 광역경제권 형성과 압축도시, 고향납세제도, 기업의 지방이전 촉진 등을 담은 지방창생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런데 현재 일본 내부의 평가는 이 정책이 실패했거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 자리를 채우며 등장한 것이 '관계인구'라는 새로운 접근법입니다.
이주도 관광도 아닌, '관계인구'라는 제3의 길
관계인구는 일상생활과 통근권 밖에서 특정 지역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지역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정주인구(이주)나 교류인구(관광, 재방문)와 달리, 관계인구는 창업·창농, 빈 점포 활용, 자원봉사 같은 직접기여형부터 텔레워크 일자리형, 고향납세나 지역특산품 구입 같은 비방문형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실제로 지역 내 소비력은 정주인구 1명당 교류인구 8명, 관계인구 25명, 무관심층 80명이라는 비율로 비교되는데, 이는 반드시 이주시키지 않아도 지역에 도움이 되는 관계를 여러 층위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을 스스로 계획을 세우게 한 돗토리현의 실험
1996년 돗토리현 지즈초에서 시작된 '일본 1/0 마을부흥운동'은 모든 주민이 자발적으로 출자해 마을진흥협의회를 조직하고, 10년 후 마을의 모습을 스스로 설정해 계획을 세우도록 한 사례입니다. 지방정부는 전문가와 공무원의 자문을 지원하고, 용도가 자유로운 교부금을 10년간 지급하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주민이 계획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행정은 뒤에서 지원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사람을 지역에 붙이는 인력지원사업들
일본은 전문가가 3년간 지역에 상주하는 지역재생매니저 사업, 고령화율 50% 이상인 한계취락에 인재를 위촉하는 마을지원 보조원 사업, 도시인재가 6개월~1년 농촌에 머물며 지역 비즈니스를 체험하는 '시골에서 일하고 싶은대' 사업을 차례로 운영해 왔습니다. 이 흐름은 2009년 '지방소멸 대응 정책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지역부흥협력대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지방 출신 대학생이 졸업 전 지방 강소기업에서 인턴십을 경험하도록 하는 지방창생 인턴십도 확대되고 있는데, 수도권 대학 진학 후 대기업 취업으로 청년이 영구 유출되는 구조를 인턴십 단계에서 끊어보려는 시도입니다.
유럽 각국의 실험: 사막화, 반란, 그리고 1유로
프랑스는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음에도 특정 지역 집중과 농촌 공동화를 '사막화'라는 표현으로 짚고 있습니다. 3,500명 미만 농촌 코뮌에 프로젝트 매니저를 배치하는 '미래의 마을' 프로그램, 디지털박물관을 농촌에 최소 200개소 여는 미크로폴리, 주민이 직접 배우로 참여하는 야외역사극처럼 인구 규모 자체보다 '살아있는 지역'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스페인은 2019년 '텅 빈 스페인의 반란'이라는 시민운동을 거치며 인구감소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투자 부족과 인프라 결핍이 낳은 구조적 차별이라는 문제의식이 국가의제로 부상했습니다. 사라고사 지방의회와 대학이 함께 운영하는 '농촌 에라스무스'는 대학(원)생이 소멸 위기 마을에서 3~5개월 인턴십을 하며 매달 약 1,000유로를 지원받는 방식입니다.
이탈리아의 1유로 주택은 재건축의무와 보증금 예치 같은 조건이 붙는 정책으로, 무조건적인 무상 제공이 아닙니다. 남부 테오라시처럼 3년 이상 거주와 자녀 한 명 이상을 조건으로 월세를 지원하는 지역도 있어, 성공 사례와 부작용이 함께 보고되고 있습니다.
🙋♀️ 지방의원·정책지원관을 위한 확인 제안
우리 지역에 '관계인구'로 분류할 수 있는 방문형·비방문형 관계 유형이 얼마나 형성돼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을 계획을 주민이 직접 세우고 행정은 자문·교부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우리 지역에 적용 가능한지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청년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인턴십·인력지원 사업이 지역 강소기업과 연계돼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주 유인책(주택·정착 지원)을 설계할 때는 이탈리아·프랑스 사례처럼 거주기간 등 실효성 있는 조건을 함께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구감소 대응을 '인구 늘리기'가 아니라 '지역의 지속가능성 높이기'로 재정의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지방창생정책이 남긴 교훈은 대규모 재정 투입만으로는 인구감소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리를 채운 관계인구, 주민자치형 마을부흥, 조건부 정착 지원 같은 시도들은 규모보다 관계의 밀도, 정책보다 지역사회 재구성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