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
벤치마킹은 했는데, 왜 우리 조례는 그대로일까요. 지방의회는 매년 새로운 조례를 발의하고 정책을 기획합니다. 그런데 정작 "어디서 아이디어를 가져올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늘 비슷한 국내 사례집을 뒤적이게 됩니다. 경관 정비, 주민 갈등, 예산 없는 문화사업, 인구감소 대응까지 참고할 국내 선례는 한정적이고,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조례를 복사해오는 데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문제는 사례의 양이 아니라 사례를 정책으로 옮기는 시선입니다. 좋은 사례를 봤다고 해서 좋은 조례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례가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갈등을 거쳤는지, 우리 지역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우지영 박사의 강의 「해외사례를 통한 정책개발 및 조례발의」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다섯 가지 정책 영역을 다룹니다.
독일 튀빙겐은 주민이 직접 토지를 사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주거공동체 방식으로 건축비를 15~20% 절감하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뤼소정원은 방치된 철로를 주민이 직접 청소하고 민원을 제기하면서 공동체 정원으로 바뀌었고, 이후에야 행정이 인프라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두 사례 모두 행정이 먼저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주민의 움직임이 먼저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독일 부퍼탈의 공중열차는 도로 확장을 원하는 행정과 역사적 경관을 지키려는 주민 사이의 갈등에서 탄생해, 118년째 사고 없이 운행되며 지역의 대표 관광자산이 되었습니다. 독일 칼텐키르헨은 공공시설물을 설치할 때 디자인 후보를 미리 공개하고 주민 모바일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강의는 이런 사례를 통해 "갈등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정책기획 단계의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민관공동연구시스템처럼 기획단계부터 주민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동시에 혁신을 만드는 길이라는 점을 실제 사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리볼리 59는 버려진 건물을 예술가 세 명이 점거하며 시작된 무료 창작공간이 되었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지구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이 함께 사는 사회통합형 친환경 주거단지로 세계 최초 플러스에너지 주택단지를 실현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귀싱은 공무원의 제안 하나로 시작된 에너지 자립마을 정책이 15년 만에 기업 50개를 유치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강의는 이 사례들 뒤에 매번 '정책시사'를 붙여, 공공건물 여유공간 활용, 신재생에너지 사용비율 강화, 사회통합형 주거단지 조성처럼 실제 조례·정책에 옮길 수 있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짚어줍니다.
강의 후반부는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 사례로 이어집니다. 홋카이도 유바리시는 폐교 위기의 고교를 살리기 위해 클라우드펀딩형 고향세를 모집했고, 야마가타현 나가이시는 아이가 태어난 가정에 육아용품을 보내는 'Baby Box 사업'을, 나가노현 하쿠바촌은 폐교 위기의 지역 고교를 국제유학 프로그램으로 되살렸습니다. 20여 개 지자체의 실제 운용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금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강의는 사례 나열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정책개발의 3원칙 아는 사람이 결정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결정한다, 충분히 소통하고 결정한다와 함께, 원론 제시형·학술연구 중심으로 흘러 활용도가 낮은 기존 정책용역의 한계를 짚고 개방형·참여형·협의형·활용형·공감형이라는 개선 방향을 제시합니다.
해외 사례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정책이 성공했는지를 읽어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우리 지역에 맞는 조례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다음 조례 발의를 준비하고 계시다면, 강의를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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